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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창간특집] 경주읍성...발굴에서 복원까지 30년 넘는 공들여 ‘경주의 조선’ 복원

선애경 기자 입력 2026.07.14 10:35 수정 2026.07.14 14:18

2002년~2035년 토지매입서 발굴, 복원까지 30년 넘는 장기 프로젝트
모두 4단계 사업으로 950억원 투입...발굴과 보상, 설계, 공사 함께 진행
현재 동·북성벽 215m와 치성 4개소, 오는 12월 준공 예정 90% 공정률
임란때 비격진천뢰 활용해 탈환하기도, 경주부 지키는 핵심 군사시설 역할
향후 미디어파사드와 역사문화 콘텐츠 등 문화공간으로 ‘활용’ 예정

 

경주읍성 야경. 사진=선애경 기자.
경주읍성 야경. 사진=선애경 기자.
한여름 붉은 노을이 번지는 경주읍성 향일문과 성벽길은 이제 시민과 관광객의 산책길이자 시간을 걷는 역사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신라의 천년 수도라는 이름 뒤에 오래도록 가려져 있던 또 다른 경주가 경주읍성 복원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주읍성 동문(향일문). 사진=선애경 기자.
경주읍성 동문(향일문). 사진=선애경 기자.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경주는 동경(東京)이자 경주부로서 영남 동부를 대표하는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옹골찬 ‘경주읍성’이 있었다.

 

2002년 토지매입부터 시작돼 2035년께 완공될 예정으로,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 경주읍성 복원은 신라 이후 천 년간 이어진 도시의 기억과 역사의 시간층을 되살리는 문화유산 복원사업으로 ‘경주에서의 조선’을 눈앞의 풍경으로 가시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옛 동성벽과 해자의 모습. 사진=경주시.
옛 동성벽과 해자의 모습. 사진=경주시 문화유산과.
◆신라와 조선의 시간이 이어져...임진왜란이라는 격동의 역사도 품어

 

경주읍성의 초축 시기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고려사’에는 현종 3년(1012) 경주에 성을 축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동경통지’에는 우왕 4년(1378) 흙성에서 석성으로 개축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경주읍성은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거치며 더욱 견고한 성곽으로 발전했다.

 

‘문종실록’에는 둘레 약 2㎞ 규모의 성곽에 동문 향일문, 서문 망미문, 남문 징례문, 북문 공진문 등의 사대문과 수십 개의 방어시설, 수백 개의 여장(성곽의 외벽에 추가로 쌓아 성의 방어·사격을 강화한 장벽)이 설치된 읍성으로 기록돼 있다.

 

옛 고도 남루. 사진=경주시.
옛 고도 남문 누각. 사진=경주시.
남문 누각에는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성덕대왕신종이 걸려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신라 최고의 문화유산인 성덕대왕신종이 조선시대에는 읍성의 남문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은 신라와 조선의 시간이 이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주읍성은 임진왜란이라는 격동의 역사도 품고 있다. 왜군에게 함락됐던 읍성은 이장손이 제작한 비격진천뢰를 활용해 탈환됐으며 이후에도 경주부를 지키는 핵심 군사시설 역할을 이어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도시정비와 철도 건설은 읍성의 운명을 바꾸었다. 대부분의 성벽은 철거됐고 성돌은 철도 노반과 민가의 담장, 축대 등으로 흩어졌다. 한때 동쪽 성벽 약 50m만이 겨우 옛 흔적을 간직한 채 남아 있었다.

 

2008년 투기도. 해자가 포함된 경주읍성 복원의 예상 모습. 사진=경주시.
2008년 투기도. 해자가 포함된 경주읍성 복원의 예상 모습. 사진=경주시 문화유산과.
◆ 2002년~2035년 토지매입, 발굴, 복원까지 30년 넘는 장기 프로젝트...총 950억원 투입

본격적 경주읍성 복원의 전환점은 2009년이었다. 경주시는 정비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발굴조사와 학술연구를 시작했고 2014년부터 본격적인 복원공사에 착수했다.

 

경주시 문화유산과 문화유산정비팀 관계자는 “읍성 복원은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발굴과 보상, 설계, 공사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장기 프로젝트”라며 “현재는 계획된 일정에 맞춰 차근차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주읍성 복원 단계별 진행 상황도. 사진=경주시 문화유산과.
4단계로 진행되는 경주읍성 복원 단계별 진행 상황도. 사진=경주시 문화유산과.
전체 사업에는 약 950억원이 투입된다. 복원 대상은 동·북성벽 1.1㎞, 향일문(동문)과 공진문(북문), 치성 12개소, 여장, 주변 역사경관과 토지보상까지 포함하는 2035년께 완공 예정인 대규모 사업이다. 현재까지 토지 100필지와 가옥 138호를 매입했으며 남은 사유지에 대한 협의도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다.

 

◆동성벽과 동문 복원 완료하고 현재 동·북성벽 215m와 치성 4개소, 오는 12월 준공 예정

1단계에서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동성벽 324m와 향일문, 치성 3개소를 복원했고 여장과 경관조명도 함께 설치해 시민과 관광객들이 역사경관을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복원된 향일문 일대는 경주 도심의 대표적인 야간 명소로 자리 잡았다. 성벽과 누각, 옹성 등에 설치된 LED 경관조명이 은은한 야경을 연출하면서 시민들의 산책 공간이자 새로운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현재.
현재 동·북성벽 215m와 치성 4개소를 복원하고 여장 및 주변 정비를 추진하는 2단계 사업이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진=경주시 문화유산과. 
현재는 총사업비 138억원을 투입해 2023년 11월 착공한 동·북성벽 215m와 치성 4개소를 복원하고 여장 및 주변 정비를 추진하는 2단계 사업이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공정률은 약 90%에 이른다.

 

담당자는 “2단계 구간은 대부분 형태를 갖춘 상태이며 마무리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2027년부터는 북성벽 220m 구간과 북문(공진문) 복원을 위한 3단계 설계용역을 추진하고 발굴조사 결과를 반영해 마지막 4단계에서는 북성벽 전체와 북문 복원을 완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가장 많은 문헌과 자료 남긴, 조선 영조 21~22년의 대대적 중수된 모습 기준으로 복원

경주읍성 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발굴조사와 공사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복원은 설계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성벽 기초석 하나, 치성의 흔적 하나, 축조층의 흙 한 켜까지 모두 조사한 뒤 그 결과를 설계에 반영한다.

 

최근 계림초등학교 북편에서 진행 중인 북성벽 발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곳에서는 성벽의 축조 방식과 개축 과정,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변화, 북문의 위치 등을 규명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시민은 “어느 시대의 읍성을 복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현재 경주읍성 복원은 조선 영조 21~22년(1745~1746) 대대적으로 중수된 모습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담당자는 “영조 때의 읍성이 가장 많은 문헌과 자료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축적된 성곽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기”라며 “특정 시대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경주읍성의 역사성을 가장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복원 과정에서는 발굴 유구는 물론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 옛 지도, ‘동경통지’ 등 각종 문헌과 사진자료를 종합적으로 비교·분석한다. 희미하게 남은 사진 속 여장의 형태까지 분석해 복원에 반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석재는 경주 화강석이 원칙, 치성(雉城)과 체성(体城)의 축성법 달라 석재도 다른 모습

복원 현장을 지켜보는 시민은 이어지는 성벽에 사용된 석재 모양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한 궁금점이 많다. 

 

치성과 체성.
이어져있는 치성과 체성의 석재가 다르다. 성벽 본체인 체성과 방어 기능이 강한 치성은 구조 자체가 다르게 축조됨에 따라 복원도 이에 따르고 있다. 사진=선애경 기자. 
이에 대해 시 담당자는 “원래부터 달랐던 축성 방식 때문”이라며 “성벽 본체인 체성(体城, 성벽의 ‘몸통’으로 성곽의 높이와 방어력의 핵심을 이루는 벽)과 방어시설인 치성(雉城, 성곽을 일부 돌출시켜 측면 공격을 가능하게 한 방어 시설)은 역할이 서로 다르다. 치성은 구조 자체가 일반 성벽과 다르게 축조됐다. 발굴조사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그대로 확인됐으며 복원 역시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원에 사용되는 석재는 경주 화강석을 원칙으로 한다. 기존 성돌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경주 외동지역 석재를 사용하고 있다. 겉모습은 역사성을 살리면서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부에는 보강석을 사용하는 등 현대 공법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 남문과 서문 복원 등 전체 복원은 어려워, 도심 대규모 철거와 막대한 토지보상 때문

복원에 있어, 남문과 서문을 포함한 전체 읍성 복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남문과 서문이 있던 자리에는 이미 시가지와 도로, 상가가 들어서 있어 대규모 철거나 막대한 토지보상 없이는 원형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담당자는 “사업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이 토지보상”이라며 “문화유산 복원과 시민의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성곽에서 문화공간으로...향후 미디어파사드와 역사문화 콘텐츠 등으로 ‘활용’

복원의 목표는 성벽을 완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경주시는 향후, 동·북성벽 전 구간에 야간 경관조명을 확대하고 미디어파사드와 역사문화 콘텐츠, 궁궐 수문장 교대의식 등 문화행사를 접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야경.
경주읍성 야경. 사진=선애경 기자. 
담당자는 “바라보고 스쳐가는 읍성이 아니라 시민과 관광객이 머물고 체험하는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향후 집경전과 동경관 등 조선시대 관련 시설도 단계적으로 정비해 읍성 전체의 역사성을 회복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철제 전 경주문화원장은 “경주를 신라의 도시로만 기억하는 데서,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지는 역사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 경주읍성 복원의 가장 큰 의미이자 가치”라며 “성벽이 한 구간씩 이어질 때마다 경주의 역사적 층위도 조금씩 완성되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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