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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멍하니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작은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과연 이렇게 작은 기기를 매일같이 계속 보게 하는 일이 한창 자라나는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늘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의학 상식은 아주 단순명료했습니다. 화면을 쳐다보는 시간 자체가 뇌 발달에 치명적으로 해롭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면 언어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주의력 결핍이 찾아올 수 있다고 수많은 전문가가 경고해 왔습니다.
그래서 늘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시청 시간을 두고 치열한 눈치 싸움과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오늘은 삼십 분만 보자는 약속은 지켜지기 어렵고, 결국 기기를 빼앗으며 울음바다로 끝나는 일상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오로지 양적인 제한, 즉 시청 시간이라는 하나의 기준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대규모 연구들을 살펴보면 이 오래된 생각에 완전히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오래 보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 보느냐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아청소년과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린 분석 결과를 보면 수많은 데이터를 종합한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 곁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영상을 함께 볼 때는, 오히려 아이의 인지 능력 발달에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기가 무조건 뇌를 망치는 독이 아니라, 화면을 보며 부모와 아이가 얼마나 다정하게 소통하느냐가 진짜 핵심이었습니다. 저 주인공은 왜 슬플까, 우리도 이따가 저 놀이를 해볼까 하고 말을 건네는 순간, 차가운 화면은 훌륭한 교육 도구로 변모합니다.
반대로 엄마 아빠가 아무 말 없이 아이 혼자 영상만 보게 내버려 둘 때는 꽤 심각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최근 덴마크에서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아주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또래보다 말이 조금 늦게 트이거나 의사소통에 서툰 아이가 부모 없이 혼자 스마트폰 영상을 보게 될 경우,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문제가 훨씬 더 심하게 증폭된다는 사실을 새로 확인한 것입니다. 언어가 서툴면 사람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감정을 조절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치열하게 연습해야 합니다.
하지만 혼자 덩그러니 앉아 쉴 새 없이 넘어가는 빠른 영상을 보면 뇌는 일방적인 자극만 받을 뿐입니다. 누군가 내 표정을 읽고 반응해 주거나, 내 서툰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진짜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귀중한 기회와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뇌세포는 가만히 화면을 쳐다볼 때가 아니라, 사람과 눈을 맞추고 표정을 따라 하며 상대방의 목소리에 반응할 때 가장 활발하게 연결됩니다. 아이를 얌전하게 달래기 위해 쥐여준 스마트폰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타인과 대화하는 연습을 할 기회를 조용히 빼앗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저녁 시간에 혼자 보는 영상은 수면의 질까지 떨어뜨려 뇌의 건강한 휴식을 방해합니다. 잘 자고 잘 놀아야 할 아이의 뇌가 일방적인 디지털 자극에 지쳐가면서,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기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작정 빼앗고 금지하는 것만이 완벽한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부모님들께 늘 간곡하게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아이를 얌전하게 가둬두는 베이비시터로 쓰지 말고, 부모와 아이의 대화를 끌어내는 즐거운 장난감으로 활용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유익한 영상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곁에 앉아 함께 웃어주고 반응해 주는 다정한 목소리입니다. 아이의 뇌를 건강하게 발달시키고 튼튼하게 키우는 진짜 마법은 화려하게 반짝이는 픽셀 속에 있지 않습니다. 화면 밖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춰주는 부모의 따뜻한 시선과 끊임없는 대화 속에 있습니다.
오늘 들으실 곡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61, 그 가운데 1악장입니다. 이 곡은 베토벤이 가장 왕성하게 걸작들을 쏟아내던 시기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교향곡 3번 ‘영웅’, 피아노 협주곡 4번,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열정’이 나온 바로 그 무렵의 음악입니다.
그러니 이 협주곡 역시 베토벤이 한창 자기 세계를 넓혀가던 때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흔히 피아노 협주곡 작곡가로 먼저 떠오르지만,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가 협주곡이라는 형식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단순히 번갈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장을 만들고 풀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큰 흐름을 완성해갑니다. 그래서 이 곡은 화려한 독주곡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장대한 교향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1악장은 시작부터 인상적입니다. 팀파니가 조용히 두드리는 몇 번의 음으로 문을 엽니다. 처음 들으면 아주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짧은 리듬이 뒤에 이어질 음악의 성격을 미리 보여줍니다. 베토벤은 이렇게 작은 재료 하나를 곡 전체의 생명처럼 키워가는 데 아주 뛰어난 작곡가였습니다.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길게 첫 장면을 펼쳐 보입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금세 등장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꽤 오래 기다리게 합니다.
그 사이 음악은 조금씩 공간을 넓혀가고, 긴장도 서서히 쌓입니다. 그래서 바이올린이 마침내 들어오는 순간, 단순한 등장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마치 이미 시작된 이야기 속으로 주인공이 늦게 들어와 조용히 중심을 잡는 느낌입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은 베토벤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긴 악장에 속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루하다는 느낌보다는, 천천히 큰 강을 따라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조급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하나의 선율을 충분히 숨 쉬게 하면서 음악을 전개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기교만 기대하고 들으면 오히려 조금 의외일 수도 있습니다. 이 곡의 진짜 아름다움은 빠르고 강한 데에 있기보다, 넓고 깊게 펼쳐지는 데에 있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때로는 노래하듯, 때로는 속삭이듯 움직입니다.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태도보다, 이미 오케스트라가 열어놓은 풍경 안에서 더 섬세한 빛을 비추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더 품위 있고,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베토벤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가 이런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오늘은 이 1악장을 들으시면서, 서두르지 않고 음악이 펼쳐지는 방식을 따라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처음의 팀파니 소리, 오케스트라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흐름, 그리고 그 위에 들어오는 바이올린의 맑은 선율을 천천히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번에 마음을 확 붙드는 음악이라기보다, 들을수록 점점 더 깊이 스며드는 곡입니다. 오늘은 안네-조피 무터 (바이올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의 1984년 연주입니다. 행복하세요.